마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며...
러시아와 북유럽4개국 여행기 본문
여행은 계획할 때부터 벌써 즐겁다.
동유럽을 시작으로 하여 서유럽, 남유럽(스페인, 포르투칼)을 다녀온 뒤
북유럽을 갈 계획을 세웠는데....
이번 여행을 위해 여행사마다 탐문해 보고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보고, 듣고,
어느 프로그램을 선택해야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올까 고민도 하는
이런 모든 것들이 나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 같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의 아쉬움과 충족감은 그 다음의 행복이 아닐까~?
여행을 출발하게 되는 이틀전인가~? 인솔자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충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는데 경력이 무려 17년이나 되는 베테랑이시라고 하여 우선 마음이 놓였다.
여행사의 어떠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린 예정보다 하루 일찍 출발을 하게 된다.
예정된대로라면 상트페테르부르그로 가야 하지만 우린 6월 7일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으로
모스크바로 향하게 되어 있었다.
공항에서 만난 원성필이란 인솔자님은 우릴 반갑게 맞아 주시고 날렵한 솜씨로 입국수속을 마치더니 게이트
앞에서 만나자 하셨다.
6월 7일
14시 20분 출발하여 모스크바에 도착한 시각은 모스크바 현지시각으로 18시 45분! 백야현상으로 아직도 해
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이라 호텔에 일찍 들어가겠구나 하였는데 이게 왠일~! 입국심사대에서 무려 2시간 30분을 소비하였다.
입국심사대의 직원들의 업무처리도 늦었지만 네줄로 서있던 우리 일행중 한쪽 줄이 갑자기 스톱이 되었다.
갑자기 문을 닫고 가버렸단다. 기다리면 되는 줄 알고 30분을 기다려도 사람이 오질 않자 할 수 없이 내가 서
있는 뒤로 줄을 옮기었는데...
내가 서있던 줄은 갑자기 러시아사람들로 보이는 사람들이(알고보니 중앙아시아 사람들이라고 한다.) 옆줄
을 만들어 버젓이 새치기를 하고 있어 줄이 줄어들질 않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한참을 기다리다보니 한사람씩 교대로 나가고 있어 줄이 줄어들어 희망이 보였는데 나도 나오고 몇
사람만 나오면 끝나나 보다 하였더니 또 한 사람이 나오질 못하고 있다.
입국 심사하는 여자가 무엇이 못마땅하였는지 그 사람의 여권은 받은 채 뒤로 가라고 하고 내보내 주질 않는
것이다.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다 인솔자님께 가보라고 하였더니 그럼 같이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고 저 사람
의 마음이 풀려서 보내 줄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그러더니 정말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가고 나니 그때서야 보내주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2시간 30분이나 걸리
게 되었고 우리들 모두에게 러시아에 대한 첫인상이 아주 나빠 여행에 대한 두려움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쉬고 나니 그래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난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 때문이 아닐까~
거기다 서울서 가져온 상추와 밥으로 모스크바 시내를 내려다보며 식사를 하게 되니 만감이 오간다고나 할
까~ 그래도 우린 우리 것으로 이렇게 식사한다고 ...
6월 8일 오전 9시.
현지 가이드 최용희씨를 만나 시내로 나아가니 어제의 나빳던 러시아에 대한 인상과 달리
시내 곳곳에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보여 와아~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원래 일정에는 없던 그리스도성당과 승리공원, 그리고 전승기념관을 들려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프랑스의 몽마르뜨언덕같은 아르바트거리로 간다.
아르바트거리는 푸쉬킨의 생가가 있고 푸쉬킨과 사랑하는 여인이 함께 있는 동상(일명 위대한 사랑이라고
함)도 있으며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서 파는 예술의 거리이기도 하다.
노브데비치수도원 에서는 오후 석양을 받고 아름답게 빛나는 호수 앞에서 사진도 찍고 공원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보기도 하였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식사를 마친 뒤 일행 중 몇분과 맥주를 한잔 하러 호텔앞 카페에 갔는데 그 넓은 카페
에 손님이 가득한데도 얼마나 조용한지 우리도 목소리를 낮춰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오랬동안 사회주의 사회에 살아서인지 표정이 없거나 어둡고 말수가 적으며 상당히 불친
절하다고 느껴졌다.
6월 9일
오늘은 우리와 함께 일정을 하기로 한 나머지 팀 11명이 모스크바로 오는 날이다.
그들이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고 우리를 만나려면 점심때가 되어야 할 듯~
그래서 우리는 인솔자님과 전철을 이용하여 아르바트 거리로 가고 현지가이드는 그 팀을 데리고 아르바트
거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우리들의 트렁크가 문제였는데 호텔에 맡겨논 뒤 우리가 점심식사후 일정을 진행하는 동안 기사가 가서 가
져오기로 했단다.
모스크바의 전철을 타고 시내로 이동하는 기분도 새로웠고 다시 아르바트거리로 가는것도 즐거웠다.
다리가 아프도록 아르바트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그림도 사고 기념품도 사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 먹으며
기다리다 보니 나머지 일행이 도착한다.
그들이 아르바트거리를 한바퀴 돌아보는 동안 우린 또 푸쉬킨의 위대한 사랑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기다려
야 했다.
이렇게 만난 일행과 합치니 우리팀 전원은 이제 31명이다.
인솔자 원성필님과 함께 32명이 앞으로 12일간 머나먼 러시아땅과 북유럽 6개국을 여행하게 되는 것이다.
점심식사 후 레닌언덕에 올라가 저 멀리 모스크바대학을 바라보고 또 모스크바 시내를 바라보며 현지가이드
로부터 설명을 들은 뒤 크레믈린궁으로 향한다.
크레믈린궁 안에 있는 대포와 크지만 조각이 난 종을 보게 되고 미카엘천사성당, 성모수태고지성당, 성모승
천성당(우스펜스키성당), 12사도성당등을 보게 된다.
아 참! 이반대제의 종루라는 것도 보았다.
정신없이 설명듣고 사진찍고 그리고 또 달려가서 설명듣고 사진찍고 나중에 사진을 보고 알아볼른지 모르겠다.
암튼 붉은 광장이라는 곳으로 나오게 된다.
이곳에서 굼백화점, 볼쇼이극장, 저 멀리 성바실리성당, 그리고 가이드가 뭐라 설명하는데
잘 안들려 일정표를 보니 레닌의 묘가 아닌가 싶다.
비는 뿌리고 일정은 바쁘고 패키지 여행이 원래 이런것인지는 알지만 참 서글퍼진다.
좀 더 머물며 보고 느끼고 즐기고 싶은데....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가는 비행기 시간이 늦을까봐 가이드와 인솔자는 노심초사 그 자체이다.
그래서 저녁은 가이드가 준비한 김밥으로 대신하여 공항으로 가는 버스 속에서 먹는다.
살벌한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먹는 김밥의 맛이 오묘하다.
모스크바에서 항공으로 상트로 간 뒤 오늘은 상트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6월 10일
오전 5시에 상트를 출발한다.
아침은 도식락으로 대체하는데 그 도시락이라는게 그렇다.
마른빵에 햄과 치즈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와 사과 한 개, 그리고 쥬스 한팩이 다다.^^
오전내내 달려 8시 40분쯤 국경에 도착하였는데 통과의례가 또 만만찮다.
러시아에서 까다롭게 하다보니 핀란드도 덩달아 까다로워 진단다.
러시아가 그렇게 까다로운데 핀란드가 쉽게 넘어가면 무시한대나 어쩐대나...이래저래 2시간 반이나 걸리니
우리만 힘들게 되어있다. 이렇게 핀란드로 넘어오면서 러시아보다 1시간 줄어서 현재 10시 52분이 9시 52분
이 된다.
여기서 헬싱키까지 또 두어시간을 달려 헬싱키에 도착하여 맨처음 간 곳은 원로원광장.
원로원광장에는 헬싱키대성전을 비롯하여 원로원(지금은 총리숙소로 쓰고있음), 헬싱키대학과 국립도서관
등이 있으며 광장 가운데는 알렉산드르2세 동상이 세워져 있다.
헬싱키대성전은 루터교 총본산이라고 하며 내외빈 접대와 취임식이나 예식등을 거행한다고 한다.
점심식사 후에는 1969년에 건축된 암석교회를 들렸다가 우스펜스키사원으로 가는데 가는 도중 광장시장에
서 또 눈요기를 한다. 이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피제품들과 양모쉐타 그리고 과일들... 과일은 체리와 블
루베리를 사는데 흥정하는사람과 내 꼴이 우스운지 관광 온 외국인이 나를 자기 카메라에 담는다. ㅎㅎㅎ 우
스펜스키사원은 1846년 지어진 비잔틴양식의 건축물로 러시아 정교회이며 크레믈린궁전에서 본 우스펜스키
사원과 같은 것이라 한다.
여기서 내려와 버스를 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갔다가 우리랑 같은 날 출발했지만 일정이 다른 지인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맛보고 기념촬영도 잊지 않았다.
헬싱키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시벨리우스공원은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곡가 시벨리우스가 80세가 되던 1945
년에 그를 기념하여 지어진 그의 얼굴이 있는 동상과 파이프오르간 같은 조형물이 중요한 볼거리였다.
이제 또 투르크까지 배를 타러 가야하기 때문에 바쁘다.
투르크에 도착하여 실자라인(핀란드 투르크-스웨덴 스톡홀름을 오가는 호화유람선)에 승선수속을 마치고
올라가니 8시가 넘어 배는 바로 출발한다. 선상식으로 저녁식사를 배불리하고 공짜로 주는 와인과 맥주로
기분들도 업이 되어 갑판을 찾아 나선다.
선상에서 보는 발틱해의 해가 지는 모습이 일품이다.
일몰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았고 하여 객실로 내려 오는데 엘리베이터 앞에는 핀란드시각과 스웨덴시각을 알
리는 시침이 두 개인 재미있는 시계가 걸려있다.
핀란드보다 스웨덴의 시간이 한시간 더 당겨지는 것이다.
내일 오전 스웨덴 스톡홀름에 스웨덴 시간으로 6시 30분 도착예정이니 어서 객실로 들어가 쉬어야 할 것 같다.
6월 11일
오전 6시 30분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고 있다.
버스로 이동하여 출발하니 7시!
오늘은 하루종일 덴마크를 향하여 이동한다.
현지가이드 없이 이동만 하는 날이라 드디어 우리의 원성필선생님께서 마이크를 잡으셨다.
이동하는 6시간여를 쉬지않고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들을 우리에게 전하느라 여념이 없어 그 박식함에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원고 한 장도 없이 앞에 누군가 앉아 있는듯이 손짓, 발짓을 다해가며 열심히 특강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
쳤지만 어느새 원선생의 강의에 빠져드는 우리들을 보게된다.
비는 쉬지않고 차창을 두드리며 원선생의 열강도 쉬지 않는 중에 베테른 호수를 지나가고 헬싱보르라는 이
정표도 보이기 시작한다.
베테른 호수를 지나다 보니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지고 호숫가에는 안개가 자욱하여 여행객의 마음을 차분
히 가라앉히고 있었다.
헬싱보르선착장 못미쳐 도로가에 있는 우리나라의 휴게소 같은 곳에서 점심식사를 현지식으로 하고 다시 헬
싱보르로 달려가 덴마크로 향하는 배를 탄다.
덴마크 헬싱괴르항에 도착할 무렵 저 멀리 크롬보그성(일명 헴릿성이라고도 함)이 보여 줌으로 당겨서 사진
을 찍어보기도 했다.
헬싱괴르에 도착하여 바로 코펜하겐으로 향하더니 원선생께서 내일 하기로 되어 있는 코펜하겐 일정을 오늘
오후에 하게 된다고 알려준다.
그러더니 코펜하겐에 도착하자 비는 어느새 그치고 토끼눈을 한 하이소프라노의 현지가이드선생께서 올라
오셔서 와우~ 빠른 속도로 설명하고, 신속하게 이동하고, 사진찍고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기분좋게 해주는 아줌마였다. 명쾌하고 경쾌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설명하는 모습에 빠르다고 불만을
할 틈도 없어 크리스찬보그성(현재의 국회의사당), 키엘 케고르 동상, 아말리엔보그성, 뉘하운항, 게피온분
수등을 고속으로 보고 들으며 쫒아 다녔다.
울 원선생님이 인어공주동상을 보아야 한다고 하니 그럼 가자고 하며 앞장을 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더니 갑자기 돌아선다.
“아니 인어공주 동상도 없는데 거긴 왜 가자는거지?”
“없어요?” “네 중국 상해에 엑스포 열리는데 출장 갔어요~!” “어머 어떡해요~?”
“그래도 그림이라도 봐야죠 뭐~“ 또 앞장을 서서 막 걸어간다. 정말 유쾌한 아줌마라 기념으로 인어공주 그
림앞에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덴마크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시청앞에 놀이공원이 있는 나라가 어데 있느냐,
이곳이 그런 나라다,(세계에서 최초로 유료놀이공원을 만든 티볼리공원이 바로 시청앞에 있었다.)
국민들에게 자전거를 타게 해서 건강을 돌보게 하여 덴마크엔 뚱뚱한 사람이 없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을 정도
로 자전거를 많이 이용한다,
그리고 코펜하겐은 운하를 끼고 있는 도시이다. 이명박대통령이 이곳을 와보고 대운하사업을 구상하셨을거다,
덴마크는 국경일에 국기를 거는게 아니라 자기 생일날 집앞에 국기를 게양한다, 기타 등등...
그녀의 입에서는 쉴새없이 덴마크 그 중에 코펜하겐의 좋은 점이 쏱아져 나오고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와 식사를 한 뒤 그녀가 가르쳐준 국립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가 이곳의 젊은이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하는 것을 보고 같이 즐기기도 하고 공원을 산책하며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6월 12일
오늘은 오전 9시에 출발하였다.
헬싱괴르에서 10시에 배를 타고 헬싱보리로 넘어가 예테보리로 향한다.
원래의 일정이라면 어제 했던 덴마크의 일정을 오전에 하고 오후에 내내 이동하여 예테보리에서 숙박하는
거였는데 원성필 가이드 선생님께서 어제 오후에 서둘러 덴마크 일정을 마치신지라 오늘은 예테보리에서 시
내구경을 할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볼보가 만들어진 도시 예테보리의 시내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한 뒤 기사님이 교대를 하셨다.
유럽은 일정시간 이상의 근무를 할 수 없는 법이 있어 기사님이 몸매가 넉넉하신 분으로 바뀌셨는데 스웨덴 분이셨다.
근데 기사님께서 스웨덴의 스뭐겐(SMOGEN)이라는 아름다운 휴양도시 이야기를 하셔서 가는 길에 들려 보자 하여 찾아 가는데
기사님도 처음이신지 조금 헤메었지만 결국은 스뭐겐(SMOGEN)을 찾아 들어갔다.
이곳 스웨덴은 특이하게 관광지 표시를 꽃모양의 부호로 알려주고 있어 그 모양을 따라 들어가니 만날 수 가 있었던 것이다.
와아~~~ 그곳에 도착하여 창밖을 내다본 우리 일행들이 보낸 탄성이다.
정말 아름다운 해안가 휴양도시가 그곳에 있었다. 우린 보너스를 받은 기분으로 어제의 바빳던 일정에 대한 약간의 불만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이렇게 가이드와 기사님과 여행객이 한몸 한마음이 되어 즐거운 여행은 계속 되어지는데...
내일은 오슬로를 가기 위해 오슬로 가까운 삭스브로그라는 RICA SAGA 호텔에서 묵게 되는데 조금 일찍 들어 간지라
저녁식사후 산책을 나왔다가 가까운 공원에서 젊은이들이 보칼그룹과 함께 즐겁게 노는 곳을 발견하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6월 13일
오전 8시 30분 노르웨이 오슬로를 향하여 출발~!
한시간 정도 달려 오니 오슬로가 보인다.
이곳에서 현지가이드가 올라오는데 보니 풋풋한 유학생 아가씨였다.
낭낭한 목소리로 노르웨이 오슬로에 대하여 설명한다. 복지국가이며 마약하는 사람들을 음지로 숨지않게 규제를 하지않고
오히려 숙식을 제공해 주면서 보는데서 마약을 하게 하는 맘좋은 나라라고,
오슬로는 덴마크에 점령당해 1624년 잿더미가 되었다가 크리스티나 5세에 의해 재건되였는데
1814년부터 1905년까지 스웨덴에 지배당하다가 해방되면서 스웨덴이 미안한 마음에 노벨상 시상식을 하게끔 선물로 주고 갔다고...
이런 설명을 들으며 제일 먼저 비겔란트 조각공원으로 갔다.
구스타프 비겔란의 조각작품을 감상하는데 인간의 생로병사와 일생을 조각으로 꾸며진 다리를 거쳐
인간들의 모습으로 탑을 만든 모노리드까지 가서는 너무 놀라워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121명의 사람이 있다는 탑의 모습은 볼수록 경이로웠다.
여기서 다시 오슬로 시청으로 가서 노벨상 시상식을 하는 홀을 구경하고 시청내의 아름다운 그림들도 감상하게 된다.
잠간 주는 시간에 기념품점에 갔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뻔 하였던 사건도 잊지 못할 일이다.
일행 중 한사람의 가방이 열려져 있고 지갑이 없어졌다고 소리치자 카운터의 아가씨가 바로 전화로 폴리스를 부르고
그 소매치기 일당은 지갑을 몰래 내려놓고 도망가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다행히 잃어버린 것이 없고 다친 사람도 없이 마무리 되었지만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리고 가방을 다시 한번 부여잡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오슬로 시내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바로 출발한다.
오슬로의 번화하다는 카를요한 거리는 버스로 이동하며 “저곳입니다.”로 끝나 버렸고,
왕궁은 소매치기 사건으로 정신이 없을 때 버스 옆으로 지나가 버렸단다. 이런....
암튼 우린 또 달려서 릴레함메르로 가는데 맘좋고 넉넉한 울 스웨덴 기사님이 길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
네비를 보고 가지만 기계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몇 번을 차를 돌려서 드디어 동계올림픽 스키점프대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기념사진 몇컷 촬영하고 다시 오따를 지나 돔바스로 간다. 우리의 숙소가 있는 곳으로~
6월 14일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떠난다.
요정의 길도 만만찮고 게이랑에르 피요르드를 보기 위해 게이랑에르에서 유람선 탈 시간인 11시룰 맞추려면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환상적인 요정의 길을 넘으며 원성필 가이드님도 기사님도 우리 모두도 와우~를 외치며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요정의 길 꼭대기에서 잠간 트롤과 사진을 찍고 또 출발하였으나 길을 잘 모르시는 기사님 네비에 의존하다보니 자꾸 시간이 늦어지고
결국은 게이랑에르 선착장에 30분 늦게 도착하여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미안한 상황이 벌어졌다.
울 원선생님께서 열심히 전화를 하셔서 배를 붙들어 주신 덕에 우린 무사히 배에 올랐지만 원선생님께선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하신다.
글구 넘 좋았던 것은 우리의 점심식사를 게이랑에르 유람선에서 하게끔 예약이 되어 있어
우리의 자리는 배의 가장자리 가장 좋은 자리에 식사와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
늦게 온 주제에 좋은 자리에 앉아 맛있는 점심식사를 하게 되니 다른 여행객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봐 조금 으쓱하는 기분도 들었었다.
헌데 점심을 먹다보니 벌써 배가 칠자매 폭포를 지나고 있어 식사를 하다말고 허겁지겁 갑판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는 해프닝을 벌렸다.
피요르드를 감상하기 위해 유람선을 탔는데 식사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갑자기 아까워 지기도 했던 순간이다.
유람선에선 한국어로도 방송을 해주고 있었는데 제일 늦게 방송을 하니 이미 배가 많이 지난 뒤 였던 것이다.
이렇게 게이랑에르에서 유람선을 타고 헬레쉘트로 건너가니 12시 30분이 되었다. 한시간 정도를 게이
랑에르 피요르드를 배를 타고 이동한거다.
헬레쉘트에서 다시 피얼란트로 이동한다. 피얼란트 빙하박물관에 2시에 예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또 바쁘다.
낯선 나라에서 낯선곳을 다니다 보니 정해진 시간에 일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 엄첨 힘들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옛날 서유럽을 다닐 때 성격이 아주 나쁜 그 이탈리아 기사는 길 하나는 정말 잘 찾아 다녔었는데
울 스웨덴 기사님은 맘은 좋은데 길을 잘 모르셔서 기사님도 힘들고 가이드도 힘들고 우리도 힘들다.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뵈이야 빙하에 도착하고 기념촬영을 한 뒤 빙하박물관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설명을 듣고 빙하에 관한 파노라마 영상으로 된 영화도 한편 감상한다.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정말 좋은 영화를 보게 되었다고 오길 잘했다고 감탄하며 그동안 길을 못찾아 헤메
었던 짜증이 다 날아간 얼굴들이다.
오늘 라르달 터널을 지나 플롬열차를 타기로 하였으나 이미 예약한 시간에 도착할 수가 없어 내일 오후에 플롬열차를 타기로 하고
송내 피요르드의 포드네스에서 만헬러 구간을 버스까지 싣고 건네주는 FERRY에 올라 십여분간 감상하게 된다.
버스로 다시 이동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곁에는 터널을 지날때마다 노요르드피요르드, 피얼란트피요르드등
피요르드의 자락들이 계속해 따라왔으며 피요르드는 눈으로 원없이 보게 된거 같았다.
이렇게 피요르드와 터널을 함께 하며 달려 라르달에서 오늘밤 숙박을 하게된다. 아름다운 호수가 바라 보이는 호텔이었다.
6월 15일
오늘도 아침 7시 40분에 출발이다. 이번엔 베르겐으로 향한다.
플롬열차를 한번 놓치는 바람에 우리의 일정도 좀 꼬였다.
2~3시간씩 걸리는 거리를 왔다가 갔다가 하는 일정이 되어 버린 거다.
라르달에서 베르겐으로 갔다가 다시 라르달로 와서 플롬열차를 타고 또 다시 베르겐쪽으로 돌아와 하당에르를 건너 야일로까지 가는 일정인 것이다.
우리가 플롬열차시간을 오전으로 하면 문제가 없는데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건 크루즈여행을 온 선박이 들어와
그 사람들이 모두 예약을 해버려 우리의 일정이 꼬인다는 원선생의 설명이 있어 모두들 이해하기로 했다.
24.5km의 라르달터널을 지날때는 그 길이에 놀라웠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를 대비하여 차를 돌릴 수 있게 7km지점마다 조명도 환하게 하고 터널도 넓게 해놓는 배려도 있었다.
베르겐으로 향하여 오는 노르웨이의 풍광은 말그대로 풍경화 그 자체였다.
이렇게 눈이 즐거우면서 베르겐으로 오니 어느새 11시가 되었다.
도착하자 마자 부지런히 다니며 어시장과 한자동맹시절의 목조건물들은 카메라에 담고, 야시장처럼 펼쳐져
있는 광장에서 여러 가지 기념품들과 연어를 비롯한 싱싱한 생선류는 눈에 담았다.
이곳을 다녀온 다른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싱싱한 연어회를 떠서 먹었다고 하던데 그런 호사는 꿈꿀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뒷골목까지 단숨에 뛰어가 하얀 맥도날드 로고가 있는 목조건물도 찍고 뒷골목의 모습도 조금 담아 보았다.
다시 차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 그 와중에 지나가던 외국인커플이 어떤 동상앞에서 동상과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어
나도 좀 찍어 달라고 하여 같은 포즈로 찍는 여유도 부려 보았다.^^
베르겐에서 한국인이 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플롬열차를 타러 출발하니 12시 30분이다.
우리가 얼마나 신속하게 움직였는지 시간이 말해준다.
플롬에 도착하여 로만틱열차 플롬라인을 탄 시간이 16시 5분~! 왕복 두시간을 소요한다고
하는데 플롬에서 미르달까지 한시간 미르달에서 플롬까지 한시간 잡으면 되는듯하다.
중간 중간 역이 있어 쉬었다 가기도 하는데 주변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는데 제일 하이라이트는 효스폭포이다.
기차가 효스폭포앞에서 한10분 정도 쉬어가는데 그동안 기차속에 있던 사람들이 다 쏱아져 나와 사진을 찍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요정이 나와 춤을 춘다고 하였는데 보질 못해 아쉬웠는데 내려올때 다시 가보니 정말 빨간 옷을 입고 금발을 나부끼며 춤추는 요정의 모습이 보였다.
쏱아져 내리는 효스폭포 옆의 춤추는 요정은 노르웨이의 관광용이겠지만 그럴듯했다.
다시 플롬에 돌아와 버스에 오른다 이제는 우리가 묵을 숙소인 야일로까지 달려가야 하는데 그 시간이 또 만만찮다고 한다.
숙소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넘을듯 해서 저녁이나 먹을 수 있을른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우리 원선생께선 가는 길에 있는 트빈데폭포 앞에서 잠시 쉬어 우리를 눈요기하게 해주었다.
야일로까지 가는 중에 하당에르피요르드에 있는 브루나빅에서 브림네스구간의 하당에르를 배로 건너갈 예정이란다.
3대 피요르드중 송내와 하당에르는 10여분간 배로 이동하면서 감상하는게 전부이다.
처음에 송내피요르드를 건널땐 이게 뭐야 싶었지만 며칠 동안 하루종일 피요르드를 끼고 살았더니 별로 불만도 생기지 않았다.
버스속에서 원선생님의 강의소리를 자장가 삼아 얼핏 잠이 들었는데 무엇에 놀란것처럼 눈이 떠져 밖을 내다보니
저녁 10시가 넘었는데도 환한 속에 꼬챙이들이 꽂혀있는 길을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걸 보신 원선생께서 설명하길 그것은 이곳에 눈이 오면 엄청나게 많이 와 길이 보이질 않아 길표시를
길다란 꼬챙이를 꽂아 놓아 알게 하는 거란다.
제설작업을 하는 차량이 길이 어딘지 몰라 들어올 수가 없을 정도로 눈이 온다는게 신기하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정상에 거의 올라온 듯 주위에 산들도 없고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쌓인 모습들만 간간이 보이고
저 멀리 하당에르빙하라는 눈덮인 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이제 해가 지려고 노을이 지는 이곳은 해발 1200m의 고지대라고 하는데
넓으면서도 아름다운 호수까지 끼고 있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가이드 원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운이 좋아 날씨가 쾌청하여 이 모든 광경을 즐길 수 있는 거라고 하신다.
평소에는 날씨가 자주 흐려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것이다.
울 기사님도 좋으신지 잠간 정상에서 차를 세워주셔서 약 5분가 사진촬영도 하면서 경치를 감상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이제 우리의 버스는 스톱을 할 수가 없단다. 유럽의 차량운행법상 우리는 운행시간을 넘었기 때문에
한번만 더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면 다시 시동이 걸리질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버스가 출발하면 야일로에 있는 숙소의 주차장에 차를 세울때까지 세울 수가 없으니 양해해 달라는 가이드님의 말씀에
모두들 걱정말라고 하며 협조하기로 하였다.
야일로의 숙소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다행히 호텔의 직원들이 퇴근하질 않고 식사준비를 해주어 밤늦게 저녁식사를 배부르게 하고
소화도 시킬겸 호텔주변을 산책하고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하루가 이번 여행중 가장 바빳던 하루 였던것 같다.
6월 16일
오늘의 일정은 야일로에서 출발하여 오슬로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또 스웨덴의 크리스틴암으로 이동하여 숙박하는
그야말로 하루종일 이동하는 날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 노르웨이와 이별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요정의길과 피요르드 그리고 플롬라인의 효스폭포와 하당에르빙하가 보이던 그 높은 고지대의 아름다운 절경은 절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런데 오슬로에 도착하여 점심식사 할 곳을 또 울 기사님이 찾질 못하신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점심이 늦어지니 배도 고프고
속도 쓰린데 맘씨 좋은 기사님이 길을 못찾아 쩔쩔매니 안쓰러워서 말도 못한다.
겨우 식당을 찾아 점심을 해결한 뒤 또 달린다. 크리스틴암으로~~~
여기 호텔은 또 재미있게 생겼다. 무슨 상가 건물의 2층부터가 호텔인데 들어가보니 있을 건 다 있는 생각외로 괜찮은 호텔이었다.
6월 17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스웨덴의 웁살라로 간다.
올해부터 새로 생긴 일정이라는데 웁살라는 대학도시로 유명하며 웁살라대학은 북유럽 최고의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웁살라 대성당이 크고 볼만 하다 하여 성당 내부까지 들어가 보고 나왔다.
차로 이동하면서 시내관광을 대신하고 다시 스톡홀름을 향하여 출발한다.
오늘의 일정도 만만찮다. 저녁 6시에 에스토니아로 가는 탈링크라는 배를 타야하니 스톡홀름에서 체재할 시간도 많질 않다.
웁살라에서 스톡홀름까지는 1시간이 채 안걸리는 거리지만 시내까지 들어가 현지가이드를 만나는데는 1시간이 더 소요되었다.
현지가이드는 이번에도 아줌마였다. 공부 때문에 오셨다가 눌러앉은 경우로 보이는데...
스웨덴은 복지가 잘 되어있고 연금은 부부가 있을 경우 1이라면 이혼부부는 1/2, 동거부부는 사망시 못받는다고 하며
이나라의 동거%는 검증해보진 않았지만 결혼전 동거가 당연시 되고 있는 듯 하단다.
동거부부의 자녀도 법적부부의 자녀와 동일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구스타프3세의 동상을 지나면서 울 나라의 세종대왕 같은 분이라고 설명하는데 좀 중언부언 하는듯 하여 얘기의 줄거리가 잘 서질 않는다.
암튼 바사호 박물관에 들어가 그 시절의 배와 내부 구조등을 구경하고 나와 왕궁으로 가려는데 차가 무지 밀린다.
그녀의 얘기로는 내일이 스웨덴 공주의 결혼식이라고~
허지만 내일은 거리가 통제되고 하여 교통이 혼잡스럽지만 오늘은 괜찮을 주 알았는데 왜 이러지? 한다.
이때 일행 중 한사람이 질문을 한다.
“공주도 동거를 했나요?”
울 현지가이드님 “글쎄요” 말끝을 흐리며 답을 못하신다~^^
왕궁 앞에까지 왔지만 좌회전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경찰이 앞에서 못 들어가게 하고 유턴을 시키고 있다.
기사님이 차를 세우고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노르웨이 국왕내외와 손자 손녀들께서 이곳 스웨덴 공주님의 결혼을 축하하러 오늘 오셨기 때문이란다.
할 수 없이 차속에서 저곳이 왕궁이고 저 앞에 것이 무엇이고 하며 설명하고는 유턴하여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감라스탄 이라는 구시가지를 보러 갔다.
세계에서 제일 좁다는 골목과 상가들이 늘비한 구시가지 거리를 현지가이드를 쫒아 정신없이 걸어가느라 무엇을 보았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구시가지를 벗어나니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나를 포함한 3며이 한눈 팔며 기념품을 사다 일행을 놓쳐
원선생께서 다시 데리러 오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나머지 일행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하였다. 정말 죄송한 순간이었다.
결국 노벨상 수상 축하 만찬회가 열린다는 시청은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서 바라 보기만 할 뿐~
탈링크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오후 6시에 출발하는 탈링크를 타기 위해선 오후 5시까지는 선착장에 도착하여야 하기 때문인데 스웨덴의 스톡홀름의 기억이 엉망으로 남을 듯~
그러나 탈링크에 올라 객실에 짐을 내려 놓은 뒤 갑판에 올라가니 기분이 상쾌하니 좋아졌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배를 타고 나갈 때 주변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있어 놓칠세라 부지런히 올라갔더니
정말 스톡홀름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즐비하고 섬마다에 장난감 집처럼 예쁜 집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어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일몰을 보려 하였으나 일찍 배를 탄 탓에 많이 기다려야 해서 다시 객실로 내려와 면세점 구경을 하였다.
탈링크가 내일 에스토니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10시(스웨덴 시간으로 9시이다. 또 1시간 시차가 시작된다.)라고 하니
배안에서의 시간은 충분하여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6월 18일
탈링크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들어간다.
선착장에는 현지가이드인 유학생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탈린의 구시가지에 있는 톰페아성(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중), 냅스키성당, 돔교회와 비루게이트등을 알아듣기 좋게 설명해 주고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두곳을 데려다 주어시내를 한 눈에 바라 볼 수 있도록 했다.
광장으로 나오는 도중의 좁은 길에서는 옛날 귀부인들의 치마가 넓어 같이 지나 갈 수가 없어 싸움이 나면 기사들이 대신 나와 싸웠는데
나중에는 서로 양보하며 다니기로 하였다는 옛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광장에 나와서 자유시간을 모처럼 약 40분 정도를 주어 광장에 나와있는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고 기념품도 구입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한식으로 된 도시락을 받아 들고 에스토니아 국경을 향하여 출발해야 한다.
국경을 통과하자면 보통 4~5시간이 걸려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려면 12시가 넘어야 할 것 같다고 원선생님이 말씀하시나 우리는 설마 하였다.
탈린에서 국경까지가 2시간 30분가량 걸리고 국경에서 4~5시간, 거기서 다시 상트 페테르부르그까지 2~3시간.
오후 1시 30분에 탈린에서 출발하니 밤 12시가 되어야 숙소에 도착한다는 이론~
그러나 그건 사실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실제 에스토니아의 국경인 나르바에서 1시간을 기다리고
다시 러시아 국경에서 3시간 30분을 기다려서 통과했다.
한국의 현대차를 실은 트럭들도 국경을 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예사 일이 아니었다.
우리 버스들이 들어가는 건너편에는 에스토니아와 러시아 국경을 건너 다니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통과의례를 하고 있었는데
육로로 국경을 가까이 갖고 있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로서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이렇게 하여 상트 페테르부르그에 들어가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6월 19일
오늘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 밤 11시 45분 비행기로 한국으로 출발이니까~
아침식사를 하고 나오니 지난번 상트에서 숙소로 안내했던 그 학생 가이드인 손은국씨가 들어오면서 인사를 한다.
버스로 이동을 하면서 보이는 것들이 다 신기하다.
우선 레닌혁명을 알리는 대포(신호탄)을 쏜 순양함 오로라호 앞에 갔다.
해군성본부앞에 있는 오로라호는 패전의 역사라고 한다.
네바강에는 13개의 다리가 있고 시내에는 크고 작은 다리가 360여개가 있다는 손은국씨의 설명을 들으며
차창밖으로 보이는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시내모습에 눈을 떼지 못한다.
뱃머리등대와 겨울궁전앞 궁전광장, 알렉산드르1세가 전승기념으로 세운 탑등
우리가 손가락을 가르키는 대로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손은국씨가 고맙다.
차를 세우고 보러 간 곳은 카잔성당. 쿠뜨주프장군이 나폴레옹에게 이기면서 한 말 “인간은 자연이나 신 앞에서 어찌할 수 없다”
“하나님이 너희를 다 내려다 보고 계신다”라는 신본주의 사상이 들어있는 표시가 있는
러시아 정교회이다. 의자가 없이 서서 미사를 드리며 아무 때나 들어가서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곳이라 한다.
다음으로 간 곳은 빼째르쿠프에 있는 여름궁전 일명 분수공원이라고도 하는 곳.
러시아의 황제나 귀족들의 휴양지인 피터대제의 여름궁전의 분수와 황금동상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곳곳에 크고 작은 분수를 만들어 시원한 여름을 날 수 있게끔 되어 있고 정면의 분수의 끝에는 바다가 닿아 있어 더욱 시원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이곳을 가면서 손은국씨가 들려준 러시아의 역사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어 여름궁전에 도착하여 중단하니 모두들 아쉬워 하였다.
러시아의 피터황제가 황제가 되자 상트를 얻기위해 스웨덴과 21년간 전쟁을 하였단다.
늪지대인 상트를 획득한 뒤 네델란드인들을 불러다가 매립하여 1713년에 수도를 상트로 옮기었을 정도로 피터황제는 상트를 좋아했고
무슨 일에서든지 적극적이어서 전쟁시에도 항상 선두에 섰다고 한다.
황제로 있으면서 또 유학을 떠나 10여년간 조선, 목공, 치과, 해부학등 공부를 하고 돌아와 페쇄적인 러시아인들을 강제 개혁하게 되는데
길다랗게 늘이고 다니는 턱수염에 세금을 붙여 턱수염을 자르게끔 유도하다가 직접 대귀족의 수염을 잘르기도 하였으며,
길다란 치마같은 것을 입고 다니는 귀족들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강제로 잘라 수치스럽게 만들기도 하였다니
얼마나 적극적인 황제였는지 알 수 있었다.
상트의 번화가인 냅스키대로를 지나자 손은국씨가 대귀족들이 살던 곳이라 알려준다.
이제 피터대제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성이삭성당과 겨울궁전인 에르미따쥐박물관을 가야하는데 성이삭성당 앞에 차를 세우려니 경찰이 막는다.
다시 조금 돌아서 잠간 사진만 찍으라고 기사님이 내려줬는데 어느새 경찰이 쫒아와 벌금을 매기는 듯~
우리는 우리대로 제대로 성이삭성당 앞에서도 아닌 멀찍이서 허겁지겁 사진을 찍고 차에 오르게 되니 참 씁쓸하다.
현지가이드인 손은국씨의 말로는 오늘 상트에서 경제포럼이 있어서 그런것같다고 하는데...
암튼 에르미타쥐박물관 앞에서도 신속하게 차에서 내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가이드가 왜 가방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알 정도로 사람이 많다.
말로만 듣던 피터대제의 초상과 예카테리나1세의 초상 그리고 사치스러웠다는 예카테리나2세의 초상등을 보고
소왕좌실, 황금기둥의 방, 연회장, 조국전쟁의 방 등등을 거쳐 램브란트를 비롯한 루벤스, 르노아르, 모네, 세잔느, 고갱, 로뎅, 반 고흐, 피카소까지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을 감상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
다시 왕자들의 방과 왕비나 공주들의 수다의 방을 지나고 테라피(카페트같은 것인데 작품으로 되어있음)가 걸려있는 방을 지나
금으로 된 관까지 보고서야 밖으로 나오는데 박물관안의 어느것 하나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이었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 옵션으로 민속공연을 보기로 하였는데 공연장이 궁전 2층에 있어 올라가는 계단이 멋지고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안내를 해주니 왠지 러시아의 귀족이 된듯한 기분이 잠시 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모든 일정이 끝나고 손은국씨가 에르미타쥐박물관 앞에서와 뱃머리등대 사진을 못찍은 우리를 위해
다시 그곳으로 데려가려는데 오늘이 또 상트의 고등학생들이 졸업을 한 날이라
졸업한 학생들이 모두 강변으로 나와 축제를 벌인다고 몰려와 있어 길이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최대한 가까운 곳에 내려 멀찍이서 말 그대로 기념촬영만 하고 다시 버스로 뛰어 오니 바로 버스는 공항으로 향하였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일행 중 한사람이 처음 인천공항에서 준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이 없다는 것이다.
같이 방을 썼던 언니의 짐도 다시 찾고 했으나 없었을 때 원성필 가이드님은 방법이 있으니 걱정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천천히 찾아 보라고 아직 시간이 많다고 침착하게 울 일행을 다독여 주었다.
역시 천천히 다시 찾아보니 다행히 한 방을 쓴 언니의 짐에서 티켓이 나와 한숨을 돌렸는데
이번엔 짐을 부치는 데서 부부가 오신 분들이 일처리가 진행이 되지 않고 계속 서 있는게 보였다.
그 옆에는 역시 원성필 가이드님이 계셨고, 나중에 알고 보니 비행기 고객 명단에 두분의 성함이 없다는 거였다.
역시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원성필님과 같이 게이트로 들어오셨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고 하면서 머나먼 이국땅들을 다닌 것이 너무 감사하다.
외국에 나와서 그 나라의 풍습도 알아가고 음식문화도 접해 보는 귀한 시간들이지만
서유럽때 너무 힘들어서 또 그러면 어쩌나 걱정하였는데 생각외로 숙소나 식사가 한 두군데를 빼고는 만족스러웠다.
물론 여행 중간중간 불만스러운 점이 없지 않지만 패키지여행의 단점이 아닐까 싶다.
이제 돌아 와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할까 하는 궁리부터 하게 된다.
여행은 병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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