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며...
[스크랩] 이병철의 종교? 질문 (3) 본문

“크게 계시 종교와 자연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 종교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종교에 속한다.”
차 신부의 설명은 간략했다.
이웃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항목
이었다.
질문은 다시 ‘천주교’를 향했다. 이번에는 ‘구원의 범위’에 대해서였다.
종교가 없어도, 혹은 달라도 착한 사람들. 신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이 회장은 물었다.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다 바뀌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공부해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타 종교인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65년 이전에는
개신교도 다른 종교와 구분 없이 남으로 봤다. 그런데 65년 이후에는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겠다. 내용이 겹친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임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나의 여행 채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뜻이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강한 증거가 있나.
“12사도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은 있다.’
이걸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개그 프로를 보면 ‘이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라는 거다.
악인이 버젓이 잘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부조리 현장에서 신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공정 사회를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탐욕이다.
한국이 불공정 사회라면 그걸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주체는 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기회를 주는 거다.
죽기 전에 악인이 회개할 수도 있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신의 자비를 본다. 벌은 사후 또는 종말 때 주어진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부자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성경 속의 부자와 바늘구멍.
이 회장의 물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면 상당히 질서가 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범죄집단일 뿐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 그들의 기준은 엄정한편이다.”

“이 질문에 100% 동의한다.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 하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몽상가나 다혈질 행동파가 될 수도 있다.
주로 ‘오직’을 강조하는 사람이 광신도가 될 소지가 많다.
오직 믿음, 오직 실천, 오직 성장, 오직 복지, 오직 우(右), 오직 좌(左), 오직 사랑, 오직 정의도 다 위험한 것이다.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되는 거다.”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거다.
공산권에서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 관계나 우호적 관계가 아니었다.”
1989년에 사회주의권 몰락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기 2년 전에 던진 것이다.
질문의 시점과 답변의 시점에 시대적 시차는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종교인의 범죄 비율보다 비종교인의 범죄 비율이 더 높다.
그나마 종교인이 범죄 수치를 낮춘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이 더 사회정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성숙하게 살지 못하고,
좀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 이다.
형식만 그리스도인이지, 내용은 안 바뀐 경우도 많았다. 빛과 소금 역할,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교황의 무오류권(무류권)을 말한다. 가톨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오류권은 교황좌에서 특별한 교리,
엄중한 진리의 문제에 관해 천명 할 때 무오류권을 발동한다.
주로 기준이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따르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동된다. 그러나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될 수 있다.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

“신부는 예수님을 대리해 양떼를 돌보는 사람이다.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떼였다.
65년 이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양떼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와 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이다.
기혼과 독신이 섞여 있다가 13세기 부터 사제는 독신이 됐다.
수도사는 그 이전부터 독신수도 생활을 했다.”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종말이 언제일까. 내가 죽는 날이 종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오메가 포인트(종말의 시점)가
있을 거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성경에는 종말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보는 시각이 좀 다르다. 파국만은 아니다. 구원을 위한 최종 추수의 시간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린다. 종말을 기대하는 사람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 신앙인의 특권은 종말을 희망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교는 결국 종말 너머를 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마지막’에 관한 것이었다. 타계 한 달 전, 24개의 질문을 던진 이 회장에게
그 마지막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질문지는 우리에게 그걸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마지막’이라 부르는 곳, 종교에선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마지막과
시작이 하나일지 모르는 곳. 그곳을 묵상케 한다.
동시에 이 회장의 질문은 마지막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 건가 하는 치열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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