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마음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며...

시스티나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만나는 네개의 방~ 본문

서유럽/이탈리아

시스티나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만나는 네개의 방~

노미킴 2011. 10. 15. 01:02

벨베데레궁을 지나니 나오는 곳이 피오 클레멘티노 전시관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가는 길목에 있는 네개의 방으로 구성된 전시관으로

교황 클레멘트 14세와 피오 6세가 만든 방들이란다.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를 거쳐 1800년대까지의 다양한 조각작품을 보관하고 있는데

헬레니즘 시대의 원작들이 많다고 한다.

 

[동물의 방] [뮤즈의 방] [원형의 방] [그리스도 십자가의 방] 이렇게 네개의 방에

나누어 전시되어 있는 조각작품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만나게 되는데

예술품에 조예가 깊지 않은 탓에 그냥 스쳐 지나온 것들이 많아 아쉬움이 많다.

 

처음 들어간 방이 [동물의 방]

1700년말~1800년대 초에 수집해서 정리해 놓은 것들이다.

이곳의 동물조각상은 헬레니즘 시대의 원작들이라는데 워낙 동물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대충 대충 보고 넘어와 카메라에 남긴 것도 없다.

대체 뭘 보고 다닌 건지 내가 한심스러울 정도다.

 

동물의 방을 지나 들어간 곳은 [뮤즈의 방]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홉명의 뮤즈 여신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뮤즈는 학문, 예술, 시등을 주관하는 신으로 원래 티볼리에 있는 것을 하드리아누스 별장에서 발굴한 것을 복사한 것이라고 한다.

 

[뮤즈의 방]에 있는 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 <토르소>이다.

미켈란 젤로가 가장 극찬하며 좋아했다는 최초의 <토르소>이다.

'토르소'란 이탈리아 어로 몸통을 뜻하며 조각에서 '토로소'는 머리와 사지가 없이 몸통만 있는 흉상을 말한다고 한다.

 

                       ▼ 뮤즈의 방에 있던 [토르소]

 

까라까라 욕장에서 발견했다는 '토르소'는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아풀로니우스가 조각한 것으로

인체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모습을하고 있어 이 '토르소'를 본 미켈란젤로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토르소'의 잘려나간 사지를 복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때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완벽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한다.

이 '토르소'는 그리스의 영웅 아이아스의 모습으로 추정되며

이 작품을 기초로 하여 르네상스시대의 수 많은 조각가들과 신고전주의 조각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발전시켜 나갔다고 하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릴때 그리스도의 몸의 모델이 되었다고 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기본 모델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 외에도 많은 조각작품들이 있으나 가이드도 중요한 이 '토르소'만 이야기해주고 통과한다. 우리도 통과~

 

'토르소'가 있는 뮤즈의 방을 지나 [원형의 방]으로 들어간다.

 

원형의 방에는 로마황제의 두상과 그리스 로마의 신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방 중앙에는 커다란 그릇 모양의 대리석 욕조가 놓여 있는데 폭군 네로가 쓰던 것이라고 한다.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터에서 가져옴으로 네로 황제의 욕조로 추정한다고 함)

원경 5m의 크기로 적색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적색 대리석은 황제 이외에는 아무도 사용하지 못했으며

네로 황제는 이 욕조에 들어갈 때 노예의 등을 밟고 올라갔다고 한다.

 

 

욕조가 놓인 바닥은 고대 로마인의 섬세한 솜씨를 엿볼 수 있는 모자이크로 바닥이 되어 있다.

모자이크의 모든 색은 대리석 고유의 색으로(색을 200가지나 나타낼수 있다고 함)표현 된 것인데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고,

대리석 자체의 색갈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바닥 모자이크 그림의 내용은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것으로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인 괴물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이승을 관장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3세기 경의 작품으로 움브리아주의 오트리콜리라고 하는 욕장바닥에서 뜯어 온 것이라고 한다.

 

 

 

좌우로 둘러 선 조각상들은 헤라클레스, 디오니소스, 주피터, 안토니우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주노 등의 상들이 있었다.

헤라클레스상은 폼페이우스극장 근처에서 가져온 것으로 청동으로 도금된 작품이었다.

특히 헤라클레스는 항상 몽둥이와 사자가죽, 황금사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고...

 

                            ▼ 헤라클레스상

 

 

특별히 집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작품들은 어느 것이 어느 조각상인지 구분도 잘 못한다.

그래도 카메라에는 담아 왔기에 올려 본다...

 

 

 

이렇게 멋진 조각상을 보다가 머리를 들어 천정을 보면 판테온 신전의 돔을 그대로 본 딴 돔형태의 천정을 볼 수 있다.

1780년대에 올려진 이 돔은 판테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지름의 크기가 21.6m에 이른다.

천정의 모습을 보고 놀라운 것은 부조로 되어 있는 것같은 천정의 무늬가 그냥 평면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다른 곳에서도 천정이나 벽의 그림에서 이와 같은 원근법과 명암법의 입체기법으로 조각한 것같은 그림들을 볼 수가 있었다.

 

 

 

 

아래에 있는 다산의 여신으로 불리우는 아르테미스(영어로 다이아나)는 어느 방에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암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으로 수많은 젖가슴이 그것을 의미하는게 아닌가 싶다.

 

 

 

원형의 방을 나오면 [그리스 십자가의 방]으로 이어진다.

그리스 십자그의 방에는 모자이크로 된 방의 바닥이 유명하다고 한다.

이 바닥에 있는 모자이크는 3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투스콜리나 지역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와 아에기스(이지스)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원형 형태의 모자이크가 18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방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성 헬레나의 석관과 콘스탄티누스의 딸인 콘스탄티나의 석관이 마주 보고 있다.

성헬레나의 석관은 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며 로마의 병사들이 야만족들을 물리치는 모습으로 장식되어 있다.

원래 토르 티나타라에 있던 것을 옮겨 온 것이라고 한다.

 

▼ 성 헬레나의 석관

 

콘스탄티나의 석관은 역시 4세기에 만들어 졌으며 로마인들이 숭배했던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칠

포도주를 담고 있는 모습을 묘사해 놓았다는데 어두워서 잘 보이질 않는다.

로마 노멘타나 길에 위치한 성녀 코스탄자 성당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 콘스탄티나의 석관

 

 네개의 방을 지나고 나면 바로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것이 아니라 또 복도로 이어지는 방들을 지나야 된다.

그 복도들 안에도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줄을 서서 있었으나 갈 길이 바쁜 우리는 많은 작품들을 통과 통과 하여야 했다.

시스티나 성당까지 가는 도중에 바티칸 박물관의 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모두 다 세밀히 본다면 며칠을 보내도 모자랄 듯 했기 때문에...

 

그리스 십자가의 방의 나오면 [촛대의 복도]로 이어진다.

촛대의 복도는 아치형의 중간 중간 문마다 양옆에 촛대 모양의 조각이 있었다.

이 복도의 방은 1761년에 만들었고 로마시대 헬레니즘, 그리스시대의 작품들(2~3세기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나

일정이 바쁜지 가이드는 별 설명없이 통과해 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라찌의 복도]

아라찌의 복도엔 양쪽 벽에 테피스트리 라 하는 카페트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주욱 전시되어 있었다.

라파엘로의 제자들이 밑그림을 그리고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한  전시용 카페트로 왼쪽벽에는 예수의 일생을 수놓은 카페트로,

오른쪽 벽엔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한 우르바누스 8세의 일화를 수놓은 카페트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 가신 후 3일만에 부활하여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의 카페트로

예수님의 눈동자나 손가락 세개를 펼치고 있는 손, 또는 예수님의 발아래 있는 단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오른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가 걷고 있는 방향으로 그것들이 따라 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디로 가든 예수님은 항상 나와 함께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곳에 와서 가이드에게 이말을 들은 사람들은 실험을 해보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네~" 한단다.

나도 역시 신기하게도 그랬다~^^*

 

아라찌의 복도에서 부터 계속 이어지는 복도들 위에나 옆에 보이는 입체적 그림들이 있다.

언뜻 보기에는 멋지게 조각한 부조로 보이지만 모두가 원근법과 명암법을 이용한 그림들이라는게 놀라울 정도이다.

 

 

 

 

그림 옆에 보이는 그림자까지도 그림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빛이 왼쪽에 있는데 그림자도 왼쪽에 있음)

 

위의 문을 통과하니 [지도의 복도]가 나온다.

양쪽 벽에 이탈리아의 지도가 지역별로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동여지도 보다 100년 앞선 16세기말

이냐지오 단티 신부의 지휘 아래 무씨아노와 그의 제자들이 이탈리아 전역을 3~4년에 걸쳐 프레스코화로 그린 것으로

제작 목적이 정확한 이탈리아 땅을 표시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탈리아 곳곳에 있는 총 40개의 교황이 지배하는 성당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지도 중 단연 눈에 띄는 지도가 있었는데 바로 베네치아의 지도이다.

 

 

복도의 길이는 120m에 이르는데 이 복도를 걸을 때는 지도 보다 천정의 멋진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천정의 그림은 아래 지도에 있는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성인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제 [라파엘로의 방]으로 들어간다.

라파엘로의 방은 서명의 방, 엘리오도르의 방(1512~1514), 보르고 화재의 방(1514~1517), 콘스탄티누스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콘스탄티누스의 방을 그리다 1520년 라파엘로는 사망했고 나머지는 그의 제자들이 완성시켰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방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만든 방으로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방 4개에 있는 그림을 다 지우고 다시 그리라고 명하는데 그때에 라파엘로의 나이 20세 였으니 얼마나 천재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황님들은 참 대단한 지위를 누렸구나 싶다.

그당시 유명한 화가를 데려다 자기만을 위하여 그림을 그리라고 하다니 네로 황제보다 더 큰 영화를 누리지 않았다 싶어진다.

 

우리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찬찬히 감상할 시간이 없어 대충 대충 넘어가고 두가지 그림앞에서 잠간 귀을 기울인다.

 

라파엘로의 방 중 콘스탄티누스의 방 천정에 그려진 그림으로  '그리스도의 승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스 신들 즉 이교도의 상징이 처참하게 바닥에 깨어져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빛나고 있는 그림이다.

 

 

 

 아래 그림은 서명의 방에 있는 '아테네 학당' 이다.

산피에트로 대성당을 떠올리게 하는 학당에서 신학, 철학, 수학, 예술등을 대표하는 54명의 학자가 모여

토론하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수학자 '유클리드'

철학의 대가 '플라톤'과 '아리스토 텔레스'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

수학에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이 나올만큼 유명한 '피타고라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보고 난 뒤 뒤늦게 넣은 '미켈란젤로' 등과

라파엘로가 무지하게 사랑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인도 이 그림속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머지의 그림들은 통과 통과 하여서 사진을 찍을 겨를도 주지 않았다. 

이제 라파엘로의 방을 지나면 시스티나 성당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선 말없이 감상만 하여야 한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개를 젖히고 천정의 천지창조 와 벽에 있는 최후의 심판을 보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무식하게 사고를 쳤다.

다음 편에 ....